제주 한 달 살기
작년 오늘, 그러니깐 정확히 2017년 3월 31일에 떠난 '제주도 한 달 살기' 그 기록을 1년이 지난 오늘부터 시작하려 한다. 세세히 기억이 날지는 모르겠으나, 인스타그램으로만 조금씩 올렸었던 기록이 있고, 나 그리고 우리의 인생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준 그 여행을 대부분 기억한다.
이효리가 제주도로 이사 가기 전부터 제주도 이주에 빠져 책을 6권이나 읽고, 제주도에 가서 살자고 남편을 설득했으나 현실과 타협이 잘 되지 않는 남편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가 '뭐 먹고 사느냐'인 거였지. 그 와중에 나는 무슨 무대포 정신이었는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나만의 생각일 뿐,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가득한 남편에게 나는 허무맹랑하고 철없는 아내였었던 거 같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무려 4년 가까이 지났고, 그때 우리는 김포에 살고 있었는데... 점점 우리가 윗 지방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잃어가고 있을 때 난 또 한 번 남편에게 제주행을 제안했다. 우리는 이미 4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었고, 이제 선택을 잘못하면 돌이키기 너무 어려운 나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그럼 우선 '한 달만 살다와 보자. 일단 살아보고 그때 다시 결정하자 '로 예전보다는 유연한 협상을 해왔다. 4년의 세월 동안 세상과 부딪히며 힘들었던 모양일세.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제주 한 달 살기' 3월 30일 남편 혼자 먼저 출발 ㅡㅡㅡㅡㅡ
이유는 한 달 살기 동안의 짐과 차를 가져가야 하는데, 차는 목포에서 배에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대략 5시간 정도 걸린 걸로 아는데, 세월호 사건 이후로 배 타는 게 너무 무서웠던 나는 그 5시간 동안 정말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남편은 무사히 도착했고, 뒤이어 딸과 나는 비행기를 타고 3월 31일에 도착했다.
비록 한 달이지만 떠나는 자의 자세
7세 딸램은 엄마가 모리셔스에서 사다준 도도새를 무슨 부적인 양 늘 지니고 다녔다.
우리의 한 달 살기 숙소 '베니스 드 빌레' 갑자기 결정돼서 떠나온 거라 한 2~3일은 미친 듯이 폭풍 검색과 연락 후 결정하게 되었다. 위치는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
우리는 제주스러운 집에서 살고 싶었으나 너무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고, 시내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름 까다로운 조건을 대어서 결정하게 되었다. 우리가 있던 동안에는 정말 대만족이었다. 주차는 집 바로 앞에 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더 제주를 느낄 수 있던 포인트였던 거 같다.
우리는 결정하고 나면 토다는 걸 싫어하고 되도록이면 긍정의 빛을 발하는 성격이라 모든 게 좋아 보였다. 우리가 제주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제주 제주 했으니깐.
굴곡 있는 이 돌담길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 길을 걸을 때면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왠지 아무것도 아닌 느낌.
똑똑똑! 우리 왔어요.
용기가 필요했던 만큼 느리게, 신나게 살아보기로 하자.
밖은 제주스러운 돌담과 밭들이 있지만, 집 안은 모던하게 되어 있어서 생활하기 불편함이 없었다. 2층 복층으로 되어 있어서 잠은 2층에 매트리스가 두 개 깔려서 거기서 잤다.
'베니스 드 빌레' 최고의 뷰. 바로 앞쪽에 밭이 있었고 멀리 낮은 산 전망이었는데 저쪽 편이 곽지해수욕장 방면이라더군.
우리의 사무실도 만들고.. 이때부터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었다지.
2층 침실 옥탑방
맞은편 쪽에 이렇게 매트리스를 하나 더 깔 수 있어서 한 달 살기 하는 동안 손님방 문도 가능했었다.
우리는 딸램 놀이방으로
화장대도 만들고 어느 정도 짐 정리했는데, 오늘은 첫날이니 밥은 못하겠소. 배가 너무 고파요.
제주 해물밥
그리하여 급 검색 후 찾아간 '제주 해물밥'
음식 너무 정갈하고 맛있었다. 멍게 세팅 이쁘다요.
난 제주 해물밥. 각종 해산물(전복, 소라, 멍게 등)과 해초(몸, 톳, 가시리, 미역)들로 이루어진 돌솥비빔밥인데, 고노와다(해삼 내장)와 전복내장으로 숙성하여 만든 소스가 굉장히 감칠맛 나는 음식이었다.
남편은 용궁 물회
우찌 용궁의 맛이 느껴지셨는지요?
제주 한 달 살기, 그 첫날은 허기진 배와 마음을 달래며 내일은 희망찬 제주의 아침을 맞이할 거란 기대와 함께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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